<몸속에 그득한> 아사천에 유화, 벽면: 100.0x280.0cm, 바닥: 가변크기, 전시전경, 2025
<전해지지 않은 문장들: 여기에 그림자가 있다> 시안미술관 전시전경, 2025
<몸속에 그득한> 디테일 컷, 2025
올해 초 성북구청 앞에서 시위 중인 성노동자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성북구 미아리 텍사스촌이 6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4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이 확정되어 그곳에서 살고 일하던 여성들을 내보내고 철거가 본격화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성노동자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 소식을 보며 2016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텍사스촌 내 빈 건물에서 진행했던 일시적 프로젝트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약 한 달간 그곳을 드나들었다. 전시장은 2층 구조의 저택과 비슷했으며, 과거 성매매 업소로 성행하던 공간이었다. 많은 방, 좁은 골목, 음산한 기운들, 그리고 여전히 욕망에 휩싸여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전시장 옆 건물에서는 과거 화재로 많은 성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옅은 핑크색 키티 잠옷을 입고 구청 앞 바닥에 누워 무언의 시위를 이어가는 여성 노동자의 기사를 보자, 그때 강렬했던 장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어떤 역사는 기록되고 보존되지만, 또 어떤 역사는 흔적도 없이 덮어버리기에 급급한 일들이 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부정성’을 지닌 장소들은 많은 경우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며 과거의 흔적을 매끈하게 도려낸다.
이번 작업에서는 사회적 인식과 지위 측면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한, 차가운 바닥에서 시위 중인 성노동자를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와 이미지를 결합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노동자의 옆구리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려 지면까지 닿으면서 퍼져나가는 강한 에너지를 상상했다. 이 작업을 보는 이도 ‘몸속에 그득한’ 에너지, 슬픔, 분노 같은 여러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형상과 제목이 되길 바란다. (2025.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