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지지 않은 문장들: 여기에 그림자가 있다 (Unspoken sentences: Here is a shadow)


  • 주최 및 주관: 시안미술관 (cianmuseum.org)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천시

  • 전시장소: 시안미술관 본관

  • 전시기간: 2025. 07. 04 - 08. 31

  • 전시총괄: 김현민

  • 전시기획: 박 천, 이상욱

  • 코디네이터: 이상욱

  • 전시 및 프로그램 진행: 김도형, 우현명, 이상욱

  • 연출스텝: 안성환, 이양헌

  • 작품촬영: 보 북스(장용근)

  • 협력: 송선주

  • 참여작가: 김동훈, 김정애, 노연이, 손주왕, 양은영, 이체린, 이향희, 전영경, 최은희

보이지 않았던 장면, 외면받아온 목소리, 말해지지 않은 단어, 그리고 규정되어버린 존재들이 여기에 놓여 있다.

이 전시는 그동안 전해지지 않은 문장들에 집중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들리지도, 말해지지도 않은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그 한 걸음의 차이가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내고, 그곳으로부터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림자’는 우리 곁에 존재하면서도 의식하기 어렵고, 가끔은 잊힌 상태로 머문다.

잔인하게도 사회는 ‘중심’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그 범주에 들지 않는 존재들을 주변으로 밀어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몰리고, 낯설고 불편하다는 시선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다름은 존중이 아니라 분리의 근거로 작용한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MBTI 또한 이러한 분류의 단면을 보여준다. 본래는 개인의 성격 경향을 파악하고 상호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였음에도, 때로는 하나의 유형에 개인을 고정하며 간편한 기준으로 쉽게 단정 지어버리기도 한다. 이를통해 상대를 ‘I’이니까 내향적, ‘T’이니까 이성적이라는 식으로 재단하기 시작한다면, 상대가 지닌 다층적 경험과 가능성은 쉽게 간과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편의적 분류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손쉽게 그어내고, 미묘한 차이를 고정된 이미지에 가둠으로써 낯섦을 더욱 공고히 만들게 된다.

그러나 누구를, 혹은 무엇을 규정하는 근거는 궁극적으로 ‘인식’이라는 작용에서 출발한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주체로부터 비롯되는 인식의 틀(frame)은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그 선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대상을 규정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규정당할 수 있다. 중심에 있다고 믿었던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주변처럼 보일 수 있고, 주변이라 여겼던 위치가 또 다른 맥락에서는 중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식의 체계는 상대적이며, 누구든 타인의 눈에 의해 주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무심코 규정했던 존재나 소외되어 온 목소리에 다시 한번 귀기울여 볼 것을 제안한다. 전시에서 발견되는 ‘그림자’는 단지 어두운 영역이 아니라, 익숙함 뒤에 감춰진 작은 생의 조각이자, 미처 말하지 못한 서사의 파편일 수 있다. 이러한 파편들은 익숙함이 만든 고정관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스스로 외면해 온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곧 존재가 반드시 뚜렷한 정의로서만 설명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규범이 만들어놓은 제도와 구조에서 벗어난 여백, 그 여백이 만들어내는 낯선 흔적이, 때로는 가장 풍부한 서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전해지지 않은 문장들: 여기에 그림자가 있다》는 그 간극의 여백을 비추는 빛이면서도, 그 안에 웅크린 그림자를 발견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전해지지 않은 문장들이 들리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굳어있던 경계는 서서히 흔들리게 된다. 이곳과 그곳의 분류가 무의미해지는 지점에 다다를 때, 우리는 비로소 그동안 배제되어 온 다른 가능성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그림자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경계를 상상하기 위한 단서가 될 것이다. (글 이상욱)

<몸속에 그득한> 아사천에 유화, 벽면: 100.0x280.0cm, 바닥: 가변크기, 전시전경, 2025






왼) <화면 끝에서 표류하고 뒤섞이는 2> 캔버스에 유화, 162.2x130.3cm, 전시전경, 2025

오) <화면 끝에서 표류하고 뒤섞이는 1> 캔버스에 유화, 162.2x130.3cm, 전시전경, 2025

<배를 갈라 동그란 아이를 꺼냈다> 캔버스에 유화, 콜라주, 116.8x91.0cm(x3piece), 전시전경, 2025

<전해지지 않은 문장들: 여기에 그림자가 있다> 시안미술관 전시전경, 2025